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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페르시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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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에이치 2004. 6. 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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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는 BC525년까지오리엔트를 통일하고, 이어소아시아연안에 있는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도시들의 반란(이오니아의 반란:BC 500∼BC 494)도 진압하였다. 다리우스왕은 BC492년 함대를 그리스 북쪽에 있는 트라키아 지방으로 보냈으나, 아토스곶()에서 난파하였다. 이것을 흔히 제1차 페르시아전쟁이라고 하는데, 이 때 페르시아가 노린 것은 트라키아였다는 점에서 페르시아전쟁에 포함시키지 않는 학자도 있다. 또한 트라키아는 페르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감으로써 목적은 일단 달성한 셈이다.

BC 490년, 제2원정에 들어간 페르시아 함대는 키클라데스 제도() 연안을 따라 에우보이아의 에레트리아시()를 공격하여 이를 함락시키고, 이어아테네북동쪽에 있는 마라톤 평야에 상륙,아테네시를 공격하였다. 이것은 이오니아의 반란 때 이 두 도시가 밀레토스를 도와준 데 대한 복수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은아테네의 중장병() 밀집대전술()에 패하여아테네시 공략을 단념하고 스니온곶을 돌아 귀국하였다. 그 후 다리우스왕은 죽고 크세르크세스가 그 뒤를 이었다. 그는 페르시아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군대와 물자를 모아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선교()를 걸고, 아토스곶에 운하를 판 뒤, BC 480년 해륙() 양면에서 그리스를 공격하였다.스파르타왕 레오니다스는 중부 그리스로 가는 통로에 해당하는 테르모필레의 애로()를 지켰으나 내통자()가 생겨 돌파당함으로써 전원 전사하였다. 이 무렵 아르테미시온 해전()이 벌어졌으나 승패는 쉽사리 결정되지 않았다.

한편,아테네는 테미스토클레스의 대함대 건조 제안을 채택하여 페르시아의 재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아테네시민들에게 이 함선에 탈 것을 설득,아테네시 전면()의살라미스섬과의 사이에 있는 바다에서 페르시아 함대와 싸워 이겼다. 크세르크세스는 곧 귀국하여마르도니우스에게 자기의 뒤를 잇도록 하였다. BC 479년 마르도니오스는 플라타이아이에서 그리스 연합군과 싸워 패하였고, 같은 해 그리스 함대는소아시아의 미칼레전투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하였다. 이렇게 하여 세 번(또는 두 번)에 걸친 페르시아의 그리스 원정은 번번이 실패하고,소아시아연안의 그리스 도시들은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페르시아의 원정을 맞아스파르타아테네는 잘 싸웠으나, 그리스의 도시 중에는 페르시아에 항복한 도시도 있었다. 또한아테네안에서도 페르시아와 내통하는 자가 있었다. BC 480∼BC 479년 그리스군의 총지휘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은스파르타였으나, 그 후로는아테네가 대신 연합함대의 지휘권을 쥐고 있다가, 마침내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됨으로써 그리스의 패권을 잡았다. 마라톤에서는 중산시민()이 중장보병()으로서 활약하였고살라미스에서 무산대중()이 수부()로서 활약하여, 정치적 발언력이 그들에게까지 미쳐,아테네의 민주화를 촉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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