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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학교경찰제 & 미국의공포심

공부장/American Study

by 지지에이치 2005. 4. 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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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50년이 넘게 학교 경찰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미국의 학교 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바로 1999년 콜럼바인고교 총기 사건을 통해서다. 900여발의 총알이 난사되며 13명이 죽고 23명이 다친 이 충격적인 사건은 연일 국제뉴스란을 장식했다. 가장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총기 사건 외에도 학원가에는 절도, 싸움, 성폭력, 마약 등 여러 종류의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학교 폭력을 '학교 안전'이라는 넓은 범위에서 접근한다. 학교 내의 폭력과 함께 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성인 사회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 그리고 9·11 테러 사건 후에는 테러 대응책도 학교 안전의 범주에 넣고 있다.

미국의 초·중·고교 안전은 크게 봤을 때 다음 네가지 종류의 제도로 운영된다.

1) 학교 안에 경비 인력을 상주시키는 경우, 2) 지역에 (일반 경찰서로부터) 독립된 '학교 경찰국'을 두는 경우, 3) 학교 지원 경찰(School Resource Officers)라 부르는 경찰관을 채용해 폭력 대응뿐 아니라 상담과 교육 역할까지 맡기는 경우, 4) 그리고 비번 경찰관을 파트 타임으로 학교에 근무시키는 경우

이 네 가지 제도는 경비/경찰 인력의 관할, 소속, 권한, 재원 면에서 차이가 있으며 각각 장단점이 있어 개별 지역과 학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필요에 따라 가장 알맞다고 여겨지는 제도를 선택한다.

경찰이 학교 문제에 개입할 때의 관건은 학교라는 교육 기관과 경찰이라는 사법 집행 기관, 즉 이질적인 두 집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학교 폭력 근절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이다.

세인트 루이스에서 공립학교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찰즈 맥크래리는 이런 점을 고려해 "학교측과 경찰측이 자신의 임무를 확실히 설정하고 늘 원활히 의사 소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로의 책임을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불필요한 이해가 발생하고 경찰과 학교 간에 반목과 충돌이 생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내 가장 규모가 큰 '로스앤젤레스 학교 경찰국'(LASPD) 관계자는 상주 경찰(로스앤젤레스의 모든 고등학교와 일부 중학교에 경찰이 상주한다)이 교사·학생들과 긍정적인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학교에 상주하는 것을 학교측이 교육권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이지 않는냐? 라는 기자의 질문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교사들은 우리가 학교에 있는 걸 반깁니다. 왜냐면 우리들이 있어서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나아가 로스앤젤레스 학교 경찰국은 학교 폭력 대응책만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을 위해 학생들에게 멘토링이라든가 다양한 학외 활동을 제공함으로써 건전한 학교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학교 안전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히버트는 학교에서 근무할 경찰관을 뽑을 때 경찰관 스스로가 학부모이면서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학교 폭력과 안전이라는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고 또 바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에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학교경찰제의 권한 강화

단적으로 이 제도가 이렇게 오래 존속되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제도가 미국에서는 효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미국 사회는 학교 경찰의 기본적 효용성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지만 이 제도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개인주의와 법 정신이 투철한 미국인들에게 정작 문제는 경찰권이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zero tolerance(폭력 절대 불가)'란 기치를 내걸고 학교에서 경찰이 행사하는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몇 가지 예로 로스앤젤레스 학교 경찰국은 1998년부터 사정 거리가 권총보다 긴 엽총을 쓸 수 있게 됐으며 같은 해 뉴욕시는 학교 안전에 대한 법적 통솔권을 학교에서 경찰로 이관했다. 참고로 로스앤젤레스 학교 경찰국의 관계자는 엽총 사용이 허가된 후 올해까지 한번도 실제로 쓰인 적은 없다고 전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학교조차 지난 10년간 학교 안전에서는 큰 변화를 겪었다고 인디애나주 그린캐슬에서 현직 교사로 10년째 재직 중인 킴 브래튼은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학교 안전 장치라고는 폐쇄 회로 카메라뿐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엄격해진 안전 지침과 학생 가방을 불시에 검색해 칼이나 총 같은 무기류를 철저히 압수하는 것은 물론 수업 중에 1층에 있는 정문 외 다른 문을 다 잠가서 경찰을 제외한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학교 안전 정책이 지나치게 강경 기조로 흐르면서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 당한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예로 비거 위스콘신 대학 교수는 학교 경찰이 불시 검문 수색, 카메라, 금속 탐지기도 모자라 경우에 따라서는 마약 단속견까지 학교 내에 끌어들이는 작태를 개탄하며 극단적인 학교 경찰제가 아이들의 존엄성은 물론 미 헌법에 보장된 권리마저 유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분명한 것은 학교 경찰제가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점이다.그리고 최근 들어 추세가 바뀌고는 있지만 미국 학교 경찰제가 전통적으로 범죄 예방보다는 학교 폭력 발생시 신속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음을 유념해야 필요도 있다.

요즘 유고연방 코소보주에서 세르비아계들에 의해 자행되는 ‘인종 청소’ 행위가 미국에서는 발생하기 어려울 것 같다.국민 상당수가 총을 갖고 있어 누군가 자신들을 집에서 쫓아내려 한다면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길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폭력성

이 영화는 미국인들의 폭력성은 공포심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매스컴과 정부에서는 대중에게 공포심을 자극하여 사회를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집에 강도가 들지도 모르고, 흑인들이 언제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 언제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전쟁도 불사하여 방지해야만 한다. 가까운 미래에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강한 폭력으로 맞서야만 한다는 심리상태가 바로 미국사회를 움직이는 심리구조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왜 유독 미국인들만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사건에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전략에 잘 넘어가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영화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흔히들 백인들이 겁이 많아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캐나다의 인구구성은 미국과 아주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성향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백인들이 사는 인접한 두 국가가 이렇게 큰 사회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그 인종적 성향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미국만의 다른 점으로 흔히 잔인했던 미국의 개척 역사를 꼽는다. 수천만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학살했던 그 피의 역사와 아프리카로부터 마구잡이로 벌인 인간사냥으로 잡아온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먹던 착취와 강탈의 역사가 미국을 다른 국가와는 다른 더욱 폭력적인 사회로 만들었다는 추측이다.

하지만 폭력의 역사를 그 이유로 보기에는 역시 석연치 않다는 점이 남는다. 전 세계 식민지를 건설했던 영국의 역사는 미국 못지않게, 오히려 미국보다 더 폭력적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들을 증오하고 학살했던 독일의 역사 역시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이다. 세계 곳곳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보다 더 잔인한 폭력의 역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국가들은 미국만큼 총기사건이 빈번하거나 공포심에 대중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캐나다와 같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함으로서 폭력성의 이유가 될 수 있는 후보들의 가능성을 제외시켜버렸다. 폭력영화, 게임, 결손가정, 폭력적 역사 등등 모두 미국만이 갖고 있는 특징은 아니며 비슷한 성격을 갖는 국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인들이 갖는 공포심의 이유로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전략을 꼽기도 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제외되어야할 대상일 뿐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인들이 대중에 공포심을 확산시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알게 모르게 행해지고 있는 정치적 기술의 고전중의 고전이다. 특히 전쟁후에 분단상태로 대치중인 남북한의 경우에는 서로의 남침과 북침위협 체제전복등등 온갖 위협을 부풀려 공포심을 확산시키는 방법이 수십년 넘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어왔다. 하지만 무려 천만의 인구가 밀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밤거리는 남녀모두 마음놓고 활보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도시이며, 뉴욕이나 LA와 같은 미국의 대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범죄가 적다. 공포심확산을 이용하는 미국의 정치적 전략은 쉽게 공포심이 확산되는 미국인들의 속성때문에 정치적으로 더 크게 이용되는 것일 뿐, 공포심을 확산시킨 매스컴과 정치인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은 불합리하다. 마찬가지로 매스컴을 이용하는 상업주의적인 전략 역시 그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그 근본원인은 이 모든 것을 바탕에서 움직이는, 즉, 미국 사회 문화에 널리퍼져 사고방식과 심리를 움직이는 고정된 패턴을 만들어낸 그 어떤 것으로 봐야한다.

폭력적인 영화, 게임, 결손가정, 역사, 정치... 이 모든 것들이 미국인들의 심리에 내제한 공포심을 설명해줄 수 없기 때문에 이 영화는 물음표만을 던지고 끝을 맺지만, 그 해답은 이 영화가 다루지 못한 곳에 있다. 토종 미국인이자 이 영화의 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쉽게 스스로 내제한 미국인들만의 차이점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설사 알게 되었더라 하더라도 영화에서 쉽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다른, 영국과 다른, 같은 인종구성을 갖는 여러 백인국가들과 다른 미국만의 특징은 바로 종교에 있다. 미국은 유럽의 오랜 종교전쟁 이후에 종교탄압을 피하기 위해 청교도들이 이주하여 세운 국가이다. 청교도들은 변질되고 부패한 유럽의 카톨릭에 반발하여 성경을 기초로 원래 있는 그대로의 변질되지 않는 초기 종교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동기에서 출발한 일종의 근본주의적인 성향을 갖는 종파이다. 이슬람의 과격단체들이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슬람-기독교류의 근본주의 종교들은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숭고히 여기는 폭력성을 내제하고 있다. 개신교가 바로 이러한 근본주의 종파로 분류된다.

미국은 개신교 58%와 카톨릭 28%로 어느나라보다 개신교의 비율이 압도적인 국가이다. 이 영화가 줄곧 미국과 비교하는 캐나다의 경우 카톨릭 47%, 개신교 41%로 카톨릭비율이 더 크고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캐나다로 독립한 역사가 말해주듯, 캐나다는 프랑스-카톨릭의 맥을 잇는 나라이다. 영국의 경우 영국국교가 50%, 개신교가 30%이고, 호주역시 기독교신자중 과반수가 카톨릭 신자이다. 이렇게 비슷한 백인사회에서 미국만이 갖는 다른 무엇인가를 찾는 다면 결국 종교가 남게 된다. (전세계에서 개신교:카톨릭 비가 최고라 할 수 있는 한국의 경우, 개신교가 카톨릭에 비해서는 절대다수이지만 불교와 함께 양분하고 있고, 개신교는 6.25전쟁후 미국의 영향으로 갑자기 확산된 것일 뿐, 오랜 역사와 문화는 유교-불교를 뿌리로 하고 있다.)

미국은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 경제, 언론등 사회의 대부분을 개신교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보면 된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얻고 신에 맹세를 하고, 법정에서의 증인들 역시 성경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들의 신앙검증은 언제나 큰 관심이었다. 지난 대선때 후보였던 부시대통령은 스스로 독실한 신자라고 매번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에 대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질문받는 것에  짜증을 부릴정도였다. 미국 달러 지폐가 있다면 당장 꺼내보라 1달라짜리에도 20달라짜리에도 뒷면 한가운데 "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과학교과서에 창조론을 싣도록 법제화하는 주가 있는가 하면, 얼마전까지 진화론이 교과서에 실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했던 주도 있다.  과학자들 마져 물리, 자연, 생물 현상에 대한 법칙을 찾는 과정을 궁극적으로 신의 뜻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여긴다.


종교들마다 그리고 종파들마다 여러가지 다양한 특징이 있지만 개신교의 특징은 우리나라에 전후에 미국의 문물과 함께 폭발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믿음이 없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공포감을 확산시키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누구나 지옥에 간다고 설파를 한다. 신은 인간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절대 권능을 가진 무서운 존재이고 끊임없이 인간의 믿음을 시험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구절은 기도할때마다 귀에 박히도록 반복한다. 이렇게 힘에 기초한 신의 모습위에 강한 힘을 완화시키는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포용하여 궁극적으로 "경외심"을 유발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를 따르도록 공포심을 유발시키고 동시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동을 줘서 절대적 힘을 가진 자를 믿고 따르게 만드는 방식이다. 믿음을 갖게 되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지옥의 공포심은 곧 안도감과 감동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힘과 공포심에 기반한 특성때문에 파생된 여러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붐비는 지하철 역이나 기차역에는 종종 "불신지옥"을 외치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의 절규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실제로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심에서 길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다. 전국에는 아직도 곧 말세가 온다며,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는 종말론적 종교집단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가족버리고 집단으로 생활을 하다가 집단자살로 마감하는 극단적 종교들은 언제나 곧 다가올 종말을 두려워하며 살았던 개신교에서 파생한 믿음을 가졌던 종파들이다. 이러한 극단적 종교현상은 불과 수십여년전 개신교가 널리 확산되기전에는 한국역사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실질적으로 개신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며, 극단적인 종교집단들이 종종 집단자살에 이르기도 하여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한 마을 전체가 한 종교지도자에 대한 극단적인 추종으로 신자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죄의 사함을 위해 어린 딸을 성관계에 바치고, 생계를 포기하며, 고립생활 끝에  연방정부가 탱크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자 방화와 집단 자살로 마감한 유명한 사건이 있을 정도 이다. 그 이외에도 미정부의 통제권을 벗어난 종말론류의 종교집단들은 그 정확한 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할 정도로 미국 전역에 퍼져있다. 

이런 심각한 극단적 종교집단의 문제가 대부분이 불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천주교도 아닌 거의 모두가 다 개신교에서 파생된 것인 이유는, 이 종교가 근본적으로 공포심을 극대화 시켜 믿음을 전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개신교가 지배하는 미국사회는 근본적으로 공포심에 의해서 사람과 사회를 움직이는 논리가 지배적으로 작용한다.

2000년이 오면 컴퓨터 착오로 대혼란이 올것이라는 Y2K를 비롯하여, 소련제국의 위협을 과대평가하여 냉전을 주도하고, 흑인폭동을 두려워하거나, 테러의 위협을 과장하거나, 있는지도 모르는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거나, 이 모든 것은 앞으로 엄청난 사건이 다가온다는 공포심에 기초한 개신교의 기본적인 심리구조가 반복적으로 학습되어 되풀이 된 결과이다. 그리고 그 심리의 뿌리는 청교도들이 미대륙으로 건너와, 평화적으로 살기를 원했던 수천만의 인디언들을 몰살시킨 "선/악"의 이분법에 기초한 종교적 사고방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디언들이 언제 자신들을 죽이려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결국 상대를 악으로 몰고 전쟁을 불사하게 된다. 흑인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곧 혐오의 감정으로 번져 무차별 총기난사로 분출된다.

미국에서 무차별적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들은 언제나 예외 없이 백인들이며, 영화의 소제인 콜럼바인을 포함해 학교에서 발생하는 무차별적 총기난사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백인이다. 이는 흑인들을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외에도 국가의 중앙통제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한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사건, 무차별적 문명개발이 가져올 자연파괴의 두려움으로 대학에 폭탄 소포를 돌린 유너바머, 이들 모두 백인들이다. 

뿌리깊은 개신교적인 개념과 사고방식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극대화 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위협을 적으로 구체화시킨다, 그리고 적은 곧 악으로 간주된다. 악을 물리치는데 있어 평화적인 해결이나 타협은 수치로 여기며, 악은 오로지 과격하고 무차별적으로 제거해버려야 할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악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은 자랑스럽고 고귀하게 여기게 된고, 자유를 지키고 가족과 약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하여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게 된다.  

미국은 몇몇 국가들을 악의축으로 지정하고 미래의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미국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미 부시대통령은성전(crusade)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반발을 산 적이 있고, 정기적으로 백악관 사람들과 성경스터디를 하며, 이라크 침공선언을 한 날에도 자기전에 성경을 읽는 일을 거르지 않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전형적이고 보수적인 미국의 개신교인이다. 미국의 오래전 역사가 지금 다시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그  심리구조가 아주 오래전 미국이 생길 때부터 시작된 종교에서부터 나온 것이며, 그 종교의 밑바탕에 깔린 공포유발 심리 구조가 정치, 언론, 영화, 미디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그러한 구도로 사회와 국가가 움직이며 지금도 반복적으로 그 종교를 주입하며 살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스스로는 미국인들만이 갖는 공포심과 폭력성의 특징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리고 그 폭력성을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인 치유에 들어가려면 그들의 종교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의 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미국의 종교가 그 폭력성의 원인이라는 걸 알았다 하더라도 영화에 감히 자신의 종교가 그 근원이자 뿌리라고 거론 할 수 있었을까? 미국이 강력한 종교국가인 것은 거기에서 증명될 것이다. 미국인들 그 누구도 미국을 움직이는 종교를 모독하는 것은 곧 그 사회와 국가에서 매장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 스스로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이 보장된 국가인 듯하다. 하지만 과연 미국인들 스스로 자신들에 내제한 폭력성을 제거해 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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