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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상

공부장/American Study

by 지지에이치 2005. 3. 22.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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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주의

간단히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은 다른 어떤 국가가 하는 일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내용이다.

이는 미국은 다른 국가와는 차별성을 가지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탄생한 국가라는 신념을 의미한다. 예외주의의 형성 배경을 보면 신대륙으로의 이주배경, 국가형성 과정, 국내적 팽창과정에서 배태된 일종의 종교적 신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외교정책의 실행에 있어서 도덕주의, 이상주의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구원주의(Messianism) 정서와 결합하여 미국적 가치를 해외에 강제로 적용하려는 정책적 노력과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 기능하였다. 

인종적 편견과 결합했을 경우에는 앵글로색슨의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인종주의로 작용하여 1890년대 이후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이념적 동력으로 작동하였다. 또한 예외주의가 미국적 가치의 내적 보존에 치중하는 고립주의에 결합하였을때에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n First) 정서로 나타났다. 

국가탄생에 대한 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예외주의는 국가의 국제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도 차별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식 팽창주의적 표현 "신에 의해 정해진 숙명"(Manifest Destiny)의 정서라든가 타국에 대한 모범국으로서의 미국이라는 신념, 그리고 "언덕위의 빛나는 집"(A Shining House on the Hill)과 같은 수사적 표현으로 나타났다.

미국 외교정책문화의 특유성을 구성하는 조건들을 살펴보면 먼저 역사 지리적 조건을 들 수 있다. 첫째, 한번도 외부세력의 침공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 풍부한 자원보전으로 인해 외부의 지원을 필요치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요인은 미국외교의 고립주의의 태생적 조건이 되었고 역사적 과정을 통해 강화되었다. 다음으로 권력정치에 대한 경멸감(American Disdain for Power Politics)을 들수 있다. 이는 미국적 도덕주의에 기반하여 두가지 형태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나는 고립주의적 정서로 나타났고, 나머지는 십자군적 이상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칼뱅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던 권선징악적 대외관의 표현, 외교적 문제에 대한 도덕주의적 수사 강조 행태, 대외정책 교리(독트린)에 대한 교조적 신봉, 미국의 전쟁참전에 구원주의적 이상주의적 가치 부여등에서 그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미국의 건국 및 국가형성과정의 초기단계의 외교이념을 살펴보면 먼저, 해밀턴 주의를 들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국가적 위대성과 민족적 우월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연방주의자였던 해밀턴은 강력한 연방을 구성하고, 해외에서 미국 국력의 효과적 실행을 주창하였다. 특히 해밀턴의 친영주의적 경향은 현실주의 경향으로 나타났고, 해밀턴주의적 이념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적 정책으로 발현되게 되었다. 현재 이는 20세기 미국의 적극적 국제주의 외교정책 원형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음으로 제퍼슨 주의를 들 수 있다. 이는 국민들의 복리증진, 민주주의 완성과 보호를 목표로 하였다. 제퍼슨은 해밀턴과 같은 팽창주의적 경향이 공화주의적 이상과 불일치한다고 간주하여 제국건설과 자유의 획득이 양립할 수 없는 목표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제퍼슨의 친불주의적 입장은 고립주의적 성향 및 미국적 이상주의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해밀턴주의와 제퍼슨주의간의 공통점은 예외주의에 대한 신념이었다.


칼뱅주의

 

16세기 제네바 종교개혁자 J.칼뱅에게서 발단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사상.

넓은 뜻으로는 칼뱅에게서 비롯된 모든 개혁파 교회의 신앙과 사상을 가리키지만, 좁은 뜻으로는 17세기초 칼뱅의 후계자들이 엄격한 예정론(豫定論)을 중심교의(敎義)로 내세운 신학체계를 말한다.

제 2 세대 종교개혁자를 대표하는 칼뱅의 신학은 제 1 세대에 해당하는 M.루터·U.츠빙글리 등과 마찬가지로 선행 여부와 관계없이 신앙에 의해서만 사람이 의로워질 수 있다는 신앙의인(信仰義認)과 전승을 부정하고 오직 성서만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 성서주의 등, <오직 신앙>과 <오직 성서>라는 2대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 기초 위에서 신의 절대적 주권(主權)을 강조하는 신관(神觀)과, 한 인간의 구원이나 멸망이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이중예정론을 내세우고, 성찬식(聖餐式)의 빵과 포도주 속에 그리스도가 현존한다고 하는 루터나 또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고 하는 U.츠빙글리와는 달리 성령의 힘이 그것들에 영적으로 관여한다는 성찬론을 정립하였다.

또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루터의 수동적 경건주의(敬虔主義)와는 달리 자신을 신의 영광을 구현하는 도구로 보는 활동주의적 경향을 띠고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권과 교회의 자유 및 독립을 역설하였으며, 설교 중심의 예배형식과 목사·장로 등의 회의체에 의한 교회운영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칼뱅의 신학사상은 17세기부터 유럽 각지로 파급되어 독일·네덜란드의 개혁파, 프랑스의 위그노파, 스코틀랜드의 장로파 및 잉글랜드 청교도의 여러 교파 등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파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칼뱅의 예정론을 둘러싸고 J.아르미니우스에 의해 시발된 논쟁에서 칼뱅 후계자들은 아르미니우스파의 주장에 반대, 신의 예정은 인류 조상인 아담의 타락 이전부터 이루어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는 엄격한 예정론을 주장하였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열린 도르트레흐트종교회의(1618∼19)에서는 칼뱅주의를 지지하는 결론이 내려져, 신의 절대적 주권과 예정을 강조하는 동시에 신의 무조건적 은혜와 인간의 무능력함을 적극 주장하고, 신자의 견인적 생활태도를 중시하는 내용의 칼뱅주의 5대강령이 수립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칼뱅의 계약사상에 주목하는 경향이 일어나서, 천지 창조로부터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 실현 과정으로 보는 계약신학(契約神學)이 성립, 이 신학에서 발단한 <구속사(救贖史, Heilsgeschichte)>의 개념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또 그 무렵 아메리카 신대륙과 앵글로색슨지방에서는 칼뱅주의가 생활 전체의 성화(聖化)를 추구하는 청교도주의 형태를 띠고 국가·사회 전반에 확대되어, 정치적 변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현대에는 K.바르트 등의 신학자가 칼뱅주의를 수용, 신의 절대적 초월성을 강조하는 변증법적 신학을 성립시키는 등 그 영향력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칼뱅주의는 너무 엄격하던 초기의 절대적 예정론이 완화되면서 급속히 교세가 확장되어, 근대 서유럽문화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M.베버가 지적하였듯이, 노동의 쾌락과 그 결과를 신이 부여한 은총으로 보는 칼뱅주의 노동윤리와 금욕주의가 근대 자본주의 정신 형성기에 이바지한 바는 매우 크다. 또 청교도들에게 인민주권 사상을 불러 일으킴으로서 민주주의 정신 성립을 촉진한 것도 칼뱅주의가 수행한 한 역할이다.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으로는 기독교의 천년왕국설 이라는 것을 주체로 천년왕국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처단해야한다는 것으로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세상을 나누는데 있다. 이 내용을 미국의 예외주의와 연결되어서 이야기 하면 바로 미국이 하는 것은 선한 행동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외에는 악 뿐이고 그래서 미국은 예외적이다 라는 것이 성립이 된다.


선민사상


종교적인 의미에서 신이 특정한 민족 혹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택했다는 사상.


넓은 뜻으로는 어떤 민족이나 사람들이 자기들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대교의 이스라엘 선민사상이다. 이스라엘에는 본래 선민의 사상이 있어 자기네 민족은 야훼신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특정 민족이 선택되었다기보다는 야훼신, 즉 하느님이 미리 어떤 사람들을 구제하기로 예정한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이 사상을 구원예정설(救援豫定說)이라고 하는데, 이 사상은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으로 주창하여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에 받아들여졌는데, 이것이 특별히 강조되어 교의(敎義)의 중심이 된 것은 칼뱅주의이다. 인간은 자기가 선택받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으나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않은 자와의 구별이 있고, 이 구별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엄격한 자기규제와 아울러 불합리한 것에 대한 전투적인 자세가 생겨나 근대사회를 탄생시킨 사상적 원동력이 되었다.

근대사회가 성립된 뒤에는 이러한 선민사상은 얼마 동안 모습을 감추었는데,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지배한 근저에는 백인의 선민사상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의 중화사상(中華思想)이나, 나치스 독일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게르만민족'이라 자처한 것도 이런 선민사상의 일종인데, 여기에는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과 경멸의식도 곁들여 있어, 타민족 지배의 사상과도 일맥 상통하여 극히 위험한 사상이다. 이것들은 민족적인 우월의식으로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특별한 가호 및 구원과 결부된 선민사상과는 인연이 먼 것들이다.

공화주의

공화주의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권력/권한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초점은 '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데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 = 공화주의'가 성립되어야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공화제(즉 공화국)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라도 '왕'이 존재한다면 공화국일 수 없다. 예를 들면 영국 같은 경우 의회 민주주의가 시작된 나라이지만 '대영제국'이라고 하지 '대영공화국'이라고는 하지 않다. 이런 경우 그 정치 체제를 '민주 공화국'이라고 하지 않고 '입헌 군주국'이라고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고전적 공화주의는 그리스에서 채택했던 제도라 할 수 있다. 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즉 절대 권력자가 없다는 점) 지금의 공화주의와 다르지 않지만, 철저한 계급 사회(노예제가 있었던)를 바탕으로 하는 제한된 민주주의였다는 측면에서 현재 우리가 말하는 공화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그 외에도 현재의 공화주의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설립된 프랑스공화국(전제 정치에 반대하고 인권을 중시하는)의 체제에 그 이론적인 바탕을 두었다고 하면, 당시의 그리스식 공화주의는 시민권이라는 개념, 즉 고전적 군주사회에 반대하는 개념에서 출발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

여러 사람이 권한을 나누어 갖는다는 것으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에서 삼권분립의 제도를 볼 수 있고, 역사적으로 유럽은 왕권과 지주 등 계급 사회였기 때문에 빼앗김이 많았던 시민들은 왕의 부패를 알고 있었고 유럽에서 이민 온 미국인들은 그러한 것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왕족이 있을 수 도 없었지만 여하튼 그들은 대표를 만들어 냈고, 정치인의 인격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보수주의

진보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주로 이데올로기적인 근대 정치사상의 특정 조류를 가리킨다. 사회심리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어떤 심리적 태도 또는 성향(性向)을 가리키기도 한다.


양자는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H.세실은 인간의 특정적 심리태도를 의미하는 보수주의를 '자연적 보수주의'라 하여 그것을 소문자(小文字)로 썼고, 특정의 사상적 조류를 의미할 때는 '정치적 보수주의'라 하며 대문자(大文字)를 사용하였다.


K.만하임도 심리적 보수주의를 '전통주의'라 하였으며, 사상적인 것을 '보수주의'라 불렀다. 실제로 정치적 진보주의자가 사생활 영역에서는 보수적 행동을 취한다거나,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사생활 영역에서는 진보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즉, 어떤 개인의 심리적 태도는 반드시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서양의 자유주의는 15세기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상으로서, 운동으로서, 또한 생활양식으로서, 제도로서 형성·발전되어 온 원리로서, 그 광범위하고 다양한 내용을 획일적으로 정식화(定式化)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유의 원리의 공통된 내용을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보편적 인권의 원리, 즉 정신적·사회적 활동에 있어서의 온갖 개인의 자유와 이니시어티브의 원리이다. 그것은 개성(個性)과 그 활동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며, 이성적(理性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보다 나은 것이 형성될 것을 믿는 입장이다. 개인의 정신적·사회적 활동의 자유에 대한 비인간적·강제적 구속과 획일화를 가능한 한 제거하는 것은 그 당연한 결과이다. 예컨대 시민적 자유(civil liberties)―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고(思考)와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비롯하여 재판에서의 정당한 절차(due process)의 존중 등은 이 원리의 전형적 표현이다.

둘째는 보편적 시민권의 원리, 즉 이들 시민적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정치제도와 정책과 기관을 비판하고, 만들고, 고쳐 만들 수 있는 자유를 모든 남녀에게 인정하는 원리이다. 정치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권리로서의 참정권(參政權), 정치에 있어서의 토론과 설득과정의 중시, 정치에 대한 사고와 비판의 자유, 보도에의 권리(알 권리), 정치적 집회·결사활동의 자유, 소수자의 권리보호 등의 정치적 자유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제도는 자연이 아니고 인간의 작위(作爲)이며, 자기 목적이 아니고 인간의 생활을 위한 수단이라는 원리이다.

제국주의 & 혁신주의

산업발전과 함께 심각한 과잉생산공황이 일어나 노동쟁의가 격화되는 한편, 종래 미국의 순조로운 성장을 가능하게 한 프런티어가 소멸되었다는 위기의식이 강해지는 가운데, 19세기말에는 대외 진출을 지향하는 새로운 팽창기운이 일어나 제국주의적 정책의 전개를 보게 되었다.

1889년 미국의 주도하에 제1회 범아메리카회의를 개최하고 라틴아메리카로의 경제적 진출 태세를 명확히 내세우고 95년 베네수엘라국경분쟁에 즈음하여 먼로주의를 일보 진전시켜 미국이 서반구에서의 주권자라는 주장을 하는 한편, 태평양방면에서는 오아후섬 진주만조차(租借)에 이어 1893년 하와이 원주민 왕국의 타도가 실시되었다.

1898년 쿠바의 독립운동을 계기로 일으킨 미국―에스파냐전쟁으로 미국은 쿠바를 보호령화하였으며, 푸에르토리코·괌·필리핀을 영유하고, 그 사이에 하와이를 병합하여 카리브해에서 서태평양에 걸쳐 광범위하게 식민지를 영유하였다. 더구나 1899년 중국에 자유주의적인 문호개방정책을 선언하는 한편, 1903년에는 강제적인 수단으로 파나마운하 지대를 획득하고, 이듬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내정간섭권 주장에 이어 <달러외교>를 추진하는 등 서반구에서 태평양방면의 전략상 요지를 확보하면서 해외시장으로의 적극적 진출을 꾀하였다.

이렇게 과잉생산에 따른 경제적 곤란은 대외팽창책에 의하여 그 타개를 도모하는 한편, 독점자본의 지배력 확대에 따른 각종 폐해에 대처하기 위하여 정부의 권한을 확대·강화하고자 하는 개혁운동이 대두되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혁신주의라고 불리며, 도시의 중산계급을 주요기반으로 19세기 후반부터 몇몇 대도시와 주(州)에서 정치개혁이 시도되었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연방정부에 의해 독점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책이 강구되었다.

즉, T.루스밸트 정권하에서 트러스트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적발, 철도의 규제강화, 정부에 의한 노동쟁의 조정, 자연자원 보호, 약품과 식품위생관리에 의한 소비자 보호 등의 정책이 취해졌으며, W.윌슨 정권하에서 은행제도의 개혁, 반트러스트법의 정비, 농업융자기관의 설립, 약간의 노동보호입법 등의 시책이 강구되었다. 이 정책들은 독점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개혁의 기운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나,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축이 되었던 것은 아니며, 사회주의를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서 열린 기회라든지 자유경쟁의 유지를 도모한다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에 의거한 면이 강했다.

또 자본가측도 산업사회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 정치개입을 필요로 하였으므로, 실제로 독점기업체 규제를 위하여 설립된 행정기관은 자본주의 경제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 실업계와 협력하거나, 조언과 지도가 주요기능이 되었다.

고립주의 & 팽창주의

미국 외교정책의 전통적 특질은 이데올로기 제일주의이다. 서유럽 여러 나라의 외교가 기본적으로 국익우선의 입장을 취해온 데 비해 미국 외교는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를 우선으로 여기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것은 미국이 특정 이념, 즉 생명·자유 및 행복의 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가치를 중시하는 것 자체가 바로 자유주의임에 틀림없으므로 미국은 자유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국가라고 할 수 있으며, 대외정책에서도 미국의 자유주의가 유일한 이데올로기적 기준으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특성은 구체적으로는 고립주의와팽창주의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지배해 왔다. 고립주의는 미국과 서유럽 여러 나라의 상호 불개입을 외교의 원칙으로 하는 입장이며, 미국을 서유럽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입장이다. 한편팽창주의는 미국이 남북아메리카 및 아시아에 무한히 팽창하는 것의 필연성을 시인하는 입장이다. 이 고립과 팽창이라는 언뜻 보기엔 모순되는 2개의 원칙은 모두 미국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와 관련을 가진다.

우선 고립주의에 대해서 살펴보면, 미국의 자유주의적 동질성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다. 미국 자유주의는 자기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유럽으로부터 고립을 꾀하는 것이다. 한편팽창주의에 대해 살펴보면, 미국 자유주의는 그 보편성의 확신으로 발전도상에 있는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 대해 무한한 적용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고립주의·팽창주의는 모두 이데올로기 제일주의의 구체적인 발현(發現)이지만, 모두 대등한 교섭상대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유럽적 외교의 표준적 형식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데올로기 제일주의의 철저한 추구는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불식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이상주의

어떤 궁극 목적 혹은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노력해 가는 정신 태도 또는 인간성의 무한한 완성가능성을 믿고, 최고의 인격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도덕적 지향(志向), 현실 세계를 어떤 궁극적 가치나 초월적 이념과의 관계에서 의의지으려는 사고방식·세계관을 가리킨다. 현실의 악이나 추(醜)에서 눈을 돌려, 실현 불가능한 환상만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자주 현실주의(現實主義)에 의해 비판된다. 그러나 너무나 현상(現狀)에 밀착된 사고밖에 할 수 없는 자는 미래에 대한 넓은 전망을 갖지 못하고, 목전의 여러 조건에 속박당할 위험이 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서로 그 결함을 보충하는 관계에 있다. 옛날에는 이 사고가 플라톤에 의하여 대표되었다. 현실 세계를 참다운 실재(實在)로 간주하지 않고, 초월적인 이데아(idea)의 세계를 진실재(眞實在)라고 생각한 그의 사상은 현실적인 개체(個體)의 세계를 실재로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와 대비된다. 다만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人文主義者)들이 생각한 유토피아와는 달리,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독일어의 이데알리스무스(Idealismus:이상주의)는 관념론(觀念論)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예컨대 I.칸트에서 G.W.F.헤겔에 이르는 독일 이상주의는 독일 관념론이라고도 불린다.

미학(美學)상으로는 사실주의(寫實主義)의 반대로서, 예술의 목적은 자연의 단순한 모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자연을 이상화시켜 완성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말하기도 한다.

현실주의

원래 철학용어로서는 플라톤에서 비롯되었고, 중세의 스콜라철학에서는 보편적 이념의 실재를 주장하는 학설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인간의 주관적 의식에서 독립된 객관적 현실을 주장하는 입장이 되었다.

정치용어로서의 현실주의의 전형(典型)은 정치현상을 윤리나 종교에서 독립시켜 파악한 N.마키아벨리의 입장을 들 수 있다. 권력정치적 상황이 선명해진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국제법 규범이나 국제도의에서 정치적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이 국제정치학의 주류가 되었다.

그 후 현실주의란 말은 정치외교에서도 논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였으나, 동시에 이 말의 의미는 다양화하여, 한편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나 탁상공론에 반대되는 태도로서 찬양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주의나 편의주의와 결부되어 비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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