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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세기와 미국

공부장/American Study

by 지지에이치 2005. 4. 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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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정의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직접적인 공포 수단을 이용하는 주의나 정책.

폭력적인 공포정치 또는 암흑정치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테러(terror)라면 테러리즘을 뜻한다. 테러는 위협 ·폭력 ·살상 등의 끔찍한 수단을 수반하므로, 테러 ·테러리즘 ·테러리스트라는 말들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한다. 테러리즘에 대한 개념과 정의에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와 이견이 있어 왔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관점에 따라서는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일반범죄로 취급하기도 하며, 다른 시각, 즉 특정집단에서는 애중적(愛衆的) ·애국적인 행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테러리즘에 대한 견해는 합의적 정의를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테러리즘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이나 이론에 따라 설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1937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에서 개최된 ‘테러리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회의’는 국제적 차원에서 테러리즘의 개념을 정의하고자 모인 첫 번째 시도였다. 그러나 참가국의 이해(利害)가 엇갈려 안건은 채택되지 못하였다. 다만 이때 열린 회의에서 테러리즘을 ‘한 국가에 대하여 직접적인 범죄행위를 가하거나, 일반인이나 군중들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원수의 배우자에 대한 살상, 공공시설 파괴 등을 테러리즘에 포함시켰다. 테러리즘은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으며, 폭력의 사용이나 위협이 따르고, 심리적 충격과 공포심을 일으키며, 소기의 목표나 요구를 관철시킨다’는 4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더듬어 보면 인류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서 《창세기》 제4장을 보면, 인류의 시조 아담이 나온다. 그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카인, 작은아들은 아벨이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동생을 쳐죽였다. 이것이 인류사상 첫 번째 살인으로 기록되었으며, 학자에 따라서는 카인을 최초의 살인자이며 테러리스트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후 인류가 집단사회를 이루면서부터 테러리즘은 강한 자의 통솔도구, 공포정치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테러리즘이란 용어는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정부의 주역이었던 J.마라, G.J.당통, 로베스피에르 등이 공화파 집권정부의 혁명과업 수행을 위하여 왕권복귀를 꾀하던 왕당파(王黨派)를 무자비하게 암살 ·고문 ·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를 자행하였던 사실(史實)에서 유래한다. 즉, 단순한 개인적인 암살이라든지 사적 단체에 의한 파괴 등이 아니고, 권력 자체에 의한 철저한 강력지배, 혹은 혁명단체에 의한 대규모의 반혁명에 대한 금압 등을 일컫는다. 프랑스에서는 자코뱅의 공포정치에 대한 1794년 이후의 테르미도르 반동, 1815년 혁명 후의 루이 왕조에 의한 보나파르트파에 대한 탄압, 1971년 파리 코뮌의 패배 후, 이들에게 가해진 베르사유파에 의한 대량학살 등은 백색 테러리즘의 예이다. 이에 대하여 앞서 예를 든 자코뱅의 강압지배는 적색 테러리즘이라 불리는데, 혁명을 추진하기 위한 강권정치, 반동파에 대한 탄압 등은 1917년의 러시아혁명에서도 자행되었다. 그리고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배확립의 과정, 독재정권 수립 후의 공산주의자 또는 유대인 등에 가해진 잔인한 박해도 테러리즘의 예이다. 이와 같이 테러리즘은 혁명 ·반혁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현상이다.


오늘날 테러 공격 형태의 특성으로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장 고전적인 테러전술의 하나인 폭탄공격(bombing)이 있고, 항공기 납치가 주대상인 하이재킹(hijacking), 그리고 인질납치(hostage seizures)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국제 테러 조직


1968년 이후 테러 관여 집단수는 73개국 220여 개 조직에 이르며, 이들 집단의 인적 교류에서 연계된 이합집산(離合集散) 추이까지 더하면 그 수는 300개를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상호협조 ·연계활동을 통해 능력을 강화하고 국가간에 이념과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에는 적대국에 대한 테러행위를 묵인, 또는 조장 ·방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⑴ 이슬람권의 테러조직 : 성전(聖戰)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회교지하드(Al al Islam:Islamic Holy War Jihad)는 이란 회교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과격단체로 아직도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 4월 18일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을 폭탄트럭으로 공격, 미국인을 포함한 63명을 살해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1983년 10월 23일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미해병대 사령부와 프랑스군 사령부를 자살폭탄트럭으로 각각 동시에 공격하여 299명의 사상자가 나게 한 다음, 1984년 9월 19일 새로 옮긴 동베이루트의 미대사관에 자살폭탄트럭으로 돌진, 12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하는 등 72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켜 위협적인 테러 그룹이 되었다. 또한 아부 니달 그룹으로 알려진 ‘검은 6월단’은 뮌헨 올림픽 선수촌 테러사건으로 유명해진 ‘검은 9월단’에서 분리, 성장한 테러 집단이다.


⑵ 유럽권의 테러조직 : ① 1910년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위하여 조직된 아일랜드공화군(IRA:Irish Republican Army)은 1969년 북아일랜드 분쟁 때 과격파 ·온건파로 분리되었다. 최근까지 테러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조직은 과격 아일랜드공화군이다. 이들은 살인 ·방화 ·폭파 등을 자행, 영국군과 자주 충돌하고 있다. ② 독일이 통일 되기 전, 미군의 서독 주둔에 반대하는 RZ(Revolutionary Cells) 그룹은 서베를린 근처의 미국 도서관에 폭탄공격을 가하는 등 반미 ·반NATO운동을 벌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신활주로공사 방해와, 중거리 미사일 설치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이 밖에 1세기 전에 일어났던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학살사건을 잊지 못하는 아르메니아 해방군이 있다.


⑶ 분리주의 운동의 테러 조직 : 프랑스와 에스파냐 국경지역인 산 세바스티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바스크 분리주의 그룹으로서, ETA(Euzkadi ta Azuktasuna:Basque Fatherland and Liberty), 바스크 분리주의 전사, 이라울차(Iraultza) 등이 있다. 모두 에스파냐에서 독립, 바스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데 목표를 둔 그룹이다. 또 하나는 1981년 이래 미주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푸에르토리코 분리주의 그룹으로서, AFNL(Armed Forces of National Liberation)과 AFNR(Armed Forces of National Resistance)가 있다.


⑷ 기타 테러조직 단체 : 이상의 테러 조직 이외에도 각국에는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테러 조직이 많다. 각국의 대표적인 테러 조직을 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악시옹 디렉트 그룹(Action Directe Group), 팔레스타인의 M-15(May 15 Organization),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Mujaheddin), 터키의 인민해방군 TPLA(Turkish People’s Liberation Army), 콜롬비아의 M-19(April 19 Movement), 독일의 바더마인호프단(Baadermeinhof Gang), 이탈리아의 붉은여단(Brigate Rosse), 일본의 적군파(JRA:Japanese Red Army) 등이 있다.


국가의 형태


국가를 분석하는 중요한 틀로써 시민 연합(시민국가)과 목적 연합(목적국가)이라는 국가 이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행정개혁이 시민국가와 목적국가로 중심을 옮겨 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 있습니다.


1. 18세기 말 이후 한 세기 ; 정치 국가 ; 시민연합으로서의 국가 이념 지향

시민연합 - 개인은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는데 자유로운 존재. 국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동 및 상호작용을 통제하는 행동규칙들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역할로 제한. ; 반국가주의로 볼 수 있음.


2. 19세기 말 이후 한 세기 ; 행정국가, 관료국가, 신행정국가 ; 목적연합으로서의 국가 이념 지향

목적연합 - 개인은 공동체 전체의 실질적이고 공통적인 목적을 추구하거나 특정 결과물을 성취하기 위한 집합체의 일부. 국가는 전체 공동체를 위한 공통의 실질적 목표를 정의하고 구성원들의 행동과 자원을 이 공통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조직하고 관리하는 일을 함. ; 국가주의로 볼 수 있음.


※ 국가주의와 반국가주의는 시민국가와 목적국가로 이해할 수 있음. 즉 국가를 시민연합(반국가주의- 개인중시)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목적연합(국가주의-행정부주도)으로 볼 것인지.


3. 결론 ; 미국은 목적연합으로서의 국가와 행정구현을 추구하였지만 비교론적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작고 파편화된 국가행정체제 유지.(반국가주의-시민연합)


전쟁과 목적연합(War and Purposive Association)


전쟁이 발발하면 국가는 모든 자원을 전쟁에서 승리라는 목적에 동원함. 즉 전쟁은 유일하고 실제적인 목적을 제공하고 이는 목적국가를 지향하게 함.

전쟁이 종료되어도 행정부는 목적국가로 행사하려 함. 가령, 가난과의 전쟁, 부정(injustice)과의 전쟁, 질병과의 전쟁, 무지와의 전쟁 등으로 확대되어 국가는 여전히 목적국가로 기능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음.


Oakeshott는 전쟁을 시민연합의 적으로 간주. 시민연합과 목적연합의 차이를 기술하면,

1) 

시민연합 - 개인 스스로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스스로 행동 선택.

목적연합 - 개인은 role performer, agent, partner로 기능하며 국가 목적 달성을 위해 도구적인 선택으로 제한됨.

시민연합에서 목적연합으로의 전환 - 인간애(humanity)의 축소를 의미.


2) 

시민연합 - 다양한 개인들은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님.

목적연합 - 충돌하는 복수의 목적을 지닐  수 없음. 다양성의 부정.

시민연합에서 목적연합으로의 전환 - 국가정책 결정에서 인간 가치 영역을 축소시킴. 즉 한 사회의 가치 추구를 위해 다른 사회에서 중시되는 가치를 희생하는 방향으로 나감.


3) 

시민연합 - 시민들을 압도하는 국가 권력을 제한적으로 행사.

목적연합 - 시민들의 생활을 통제하는 무제한적인 국가 권력을 잠재적으로 추구.(국가 목적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결국 권력 분할을 위한 헌법장치, 사법부, 연방주의는 장애물로 간주할 가능성도 존재.


결국 전쟁은 미국이 지니고 있는 humanity, human value, governance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바꿀 잠재력을 지님.


그렇다면 911 사태는 어떠한 시사점을 지니고 있을까?


아직까지는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이 지닌 시민연합으로서의 국가이념을 목적연합으로서의 국가이념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음. 하지만 안심할 수 없음.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조짐이 보임.


1) 정치 분야에서 자신들의 정책 아젠다를 전쟁의 맥락에 두고 전쟁에서 유발되는 결정에 있어 단결과 추진력을 이끌어 내려 함.

2) 테러와의 전쟁의 속성상 정해진 시간개념이 없음. 냉전의 예에서처럼 오랜 기간을 끌며 목적국가로 지향할 가능성 있음.

3) 국지전의 경우에도 군사 안보상 목적을 위해 헌법의 원리를 희생하려는 경향이 있어 왔음을 경계해야 함. ; 베트남 전쟁이나 이란전 등의 예


미국의 몰락


철(鐵)이 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모든 나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근심하지 말라. 철은 너희들이 손잡이를 제공해 주지 않는 한 결코 너희들을 해칠 수 없느니라."  -탈무드-


미국의 양심적인 인사들은 오스발트 슈팽글러의 저서 '서구의 몰락 (The Decline of the West)'에 주목하고 있다. 슈팽글러는 그 책에서 "과거의 모든 문명은 그 중심축을 이룬 이데아가 핵심적 정신으로서의 내용을 잃게 될 때 몰락하는 특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몰락할 때 다음의 네 가지 사회현상을 보여 왔다고 한다.

첫째,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불평등이 가속화 된다, 둘째,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점점 빛을 잃어 가더라, 셋째, 비판적 사고가 줄어들고 지적 수준이 떨어 지면서 문맹자들이 확산되었다, 넷째, 핵심적 정신의 실질적 내용이 사라지고 저급한 수준의 정신이 나타나더라...


모리스 버만은 그의 책 '미국문화의 몰락 (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에서 슈팽글러의 지적이 오늘의 미국 경제 현상에 부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인구조사국의 통계에 따르면 1970년도 소득 수준 하위 20%가 국가 전체 소득의 5.4%를 차지했고, 상위 5%가 15.6%를 차지했다는데 1994년에는 전자가 5분의 1로 줄어 4.2%로, 후자가 3분의 1이 늘어 20.1%로 되어 소득 격차가 한층 더 크게 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소위 미국적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들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1996년 세계 부호 447명의 재산을 합한 금액은 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25억 명의 재산을 합한 것과 같은 금액이었다. 이런 불평등은 부호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갈취한 데에서 일어 났다고 모리스 버만은 주장한다. 미국 기업인 나이키는 인도에 있는 공장에서 운동화를 생산하면서 종업원들에게 하루 1달러 3센트의 일당을 지급했다. 지금 나이키 운동화는 한국에서 15만원을 홋가한다. 콜롬비아에서 생산되는 달콤한 커피 뒤에는 이와 같은 쓰디 쓴 현실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런 불평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꺼이 무기를 든다.


미국 사람들의 수명은 점점 길어 지고 있는데 반하여 출산율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 보장 정책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4명의 젊은이가 1명의 늙은이를 부양하는데, 50년 후에는 1명의 젊은이가 1명의 늙은이를 부양할 것이라 한다. 미국은 경제 정책에서 연거푸 실패를 범하면서 국가 예산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제 예산으로 사회 보장 정책을 뒷받침 해 주기 어렵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우민화가 지속되어 대학생들도 기초 상식이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학생의 기호에 맞는 과목들만 개설하고 있다. 학생들을 모우지 못하는 교수들에게는 보따리를 싸서 대학을 떠나라고 한다. 대학 교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문적 능력이 아니라 경영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 총장들은 학자보다는 CEO를 지향한다. 미국 국민들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출판사들과 서적상들이 도산했다. 고전은 읽지 않고 '해리 포터,'  '모니카 스토리,' 힐러리 자서전 같은 저급한 것들을 읽는다. 미국 전역을 돌아 다녀 보면 희망을 잃고 TV에 매달려 사는 군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이런 모습들은 몰락의 징후라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의 재력과 무력은 이 지구상 어떤 나라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Money is talk,' "Power is unique"라고 즐겨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미국의 몰락을 원치 않는다. 미국이 망하면 이를 대체할 세력이 없으므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혼란 속에서 수 많은 희생자들이 생길 것이란다. 그래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현실적으로 국제 사회의 비전이 미국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미국 밖에는 이런 능력을 지닌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오만함은 더욱 질겨 진다.


미국의 오만함 전면에 나타나고 있는 자들이 바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Neoconservatives / 이하 '네오콘'이라 함)이다. 네오콘의 성격은 외국에 대하여 미국의 예외주의를 인정하라는 것으로 선명하게 나타난다. 미국이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경찰국가로서 부득이한 조처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요구를 넘어 일방적인 선포다. 당연히 많은 국가들이 불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현실적인 조처를 취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여기에 전 세계 평화를 위한 딜레마가 있다. 바로 이런 네오콘의 선두에 미국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포진해 있다. 분명히 몰락해 가고 있는 미국, 그러나 이 세상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무기를 지닌 미국... 그 안에 들어 있는 미국 기독교 원리주의자들. 여기서 우리는 미국 부흥의 원동력이었던 기독교 정신을 먼 옛날의 추억으로 바라 봐야 하는 아픔을 느낀다. 아울러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 대하여 어떤 배신감을 느낀다. 이들의 행동이 미국을 오도하고 결국 선교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하나님 나라 확장을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참으로 큰 시험거리다. 이 손실이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가...


9.11 사태와 미국의 오만한 태도


미국인들 특히 네오콘에게 있어 9.11 사태는 유대인들 특히 종교인들에게 있어 주후 70년의 성전붕괴와 같은 정도의 사건처럼 여겨진다. 9.11 사태에 대하여 여기서 구태여 논하지는 않겠다. 미국의 조지 w 부쉬 대통령은 9.11 사태를 핑계로 테러리즘은 근절시킨다 하여 아시아의 두 개 나라 즉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요절내고 정권을 바꾸어 버렸다.


미국이 이 과정에서 죽인 사람들의 수는 9.11 사태 때 폭파된 세계무역센터에서 죽은 사람들 수의 수 십 배에 달한다.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파악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 정부는 거짓말만 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가 유전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미국이 욕심을 내고 있던 차에 9.11 공격같은 게 있게 되니 그걸 방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미국 스스로 9.11을 획책했다고도 한다.


미국은 9.11 사태는 빈 라덴이 주도하는 알카에다라는 테러 조직이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하여 빈 라덴이 시인도 했다. 이 테러 조직의 구성원들은 아랍인들로 이슬람 교도들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미국의 질서를 좋든 싫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데 어찌하여 이 이슬람 교도들은  "아니요"라면서 당돌하게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최근 한국의 MBC-tv 기자와 인터뷰한 이라크의 항전 세력은 "한국은 미국이 무서워서 이라크 파병을 결정 할 지 모르지만 우리는 미국이 무섭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미국을 자극하면 가난해 질 지 모른다고 해서 많은 나라들이 미국에 추파를 보내지만 우리는 가난이 무섭지 않다"고 했다.


이슬람교도들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 가는 것 처럼 어렵다"고 한 성경의 말씀을 수긍한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 특히 깔뱅(Jean Calvin)은 부자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은 돈에 대하여 심각하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이슬람교도들은 생각한다. 그들은 가난해야 천국에 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가난하게 살 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지가 아니라 신앙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석유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나 경제적 이득을 바라고 참전하는 나라들은 더러운 것들이다. 더러운 것들에 대한 항전은 신의 뜻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군 파병에 따른 위험부담과 문제가 있다. 빈 라덴은 적잖은 그의 재산을 신의 뜻에 바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수 많은 아랍의 젊은이들이 무슬림 전사로서 이라크 전선에 자원해 오고 있다. 팔레스틴의 무자헤딘 등 테러 단체들의 정신도 이와 같다. 바로 이것이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사태의 본질이다.


한편, 아프가니스탄과 아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는 미국 정부의 태도는 참으로 오만하다. 무엇보다 먼저 부쉬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이유로 들었던 이라크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근거가 없음이 밝혀 졌다. 미국은 아무 이유가 없는 불의한 전쟁을 벌인 것이다. 보편적 정의에 따르면 부쉬 대통령은 당연히 전범으로 기소되어햐 한다. 그러나 누가 그를 전범으로 잡아 들일 것인가? 여기서 정의에 대한 개념을 달리 해야 하는가 하는 혼돈을 느낀다.


미국은 미국 언론의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성 즉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을 아우른 옐로우 저널리즘과 상업성에 편승하여 전쟁을 전자 게임처럼 치루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부상 당하고 생명을 빼앗기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이에 대한 윤리적 아픔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저 게임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불상사로 보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태도는 외국에 대해서만 불공정한 것도 아니다. 내국인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파병을 하기 위해 실시한 징집에 있어서도 공평성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고 미국 반전단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 의회 등 최고위층 500명의 공직자들 가운데 오로지 한 사람만 이라크 전장에 아들을 보냈다고 한다. 이라크에 파견된 군인들 대부분은 소시민들이거나 유색인종이거나 시민권이나 영주권 얻기를 원하는 용병이라고 한다. 죽는 것은 이들이고 승리를 보도 할 때는 백인들이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미국정부는 상황에 따라 아주 더러운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이라크 전장에서 제시카 린치 일병이 구출되었을 때 미국 정부는 매스콤을 이용, 그녀를 전쟁영웅으로 미화시켰다. 그런데 아라크 전쟁이 인기를 잃은 지금 미국 정부는 그녀가 이라크 의사들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면서 이라크 군인들에게 대한 미국의 복수를 선동하고 있다. 린치 일병과 그녀의 부모는 미국 정부가 필요에 따라 개인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고 통분하고 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여 새삼 이야기거리도 되지 않는다.


지금 미국은 수 백 수 천 억 달러를 더 쏟아 부어도 빈 라덴이나 사담 후세인의 세력을 근절시키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이미 지적한 대로 미국은 정신력이나 윤리적인 측면에 있어 무슬림에게 패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지적은 이미 부쉬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쉬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 미국은 전자게임 하듯이 전쟁을 수행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군인들은 방금 농사 짓다 끌려온 사람들이다. 이라크의 소위 테러리스트들은 평시민들의 가족이다.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을 공격하고 있는 팔레스틴 테러리스트들 가운데는 대학생들이 많다. 이들의 죽음이 그들 가족들의 마음에 그리고 그 국민들 마음에 무엇을 심어 놓을 것인가? 예수님에 대한 증오를 심어 놓고 있다면?


네오콘을 지지하는 미국의 기독교원리주의자들


WEC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미국은 그 인구의 87%가 기독교도이다. 그리고 인구의 52%가 개신교도이다. 국교가 없다고 해도 당연히 세계 최대의 개신교 국가이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 과반수가 미국인들이다. 미국은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이며 그 숫자는 2위인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선교비로 치면 100배가 넘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수는 1만명 내외이다. 이런 기독교도의 나라가 전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온갖 부패가 점철된 더럽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된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이는 당연히 선교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최대 교단인 남침례교회가 미국의 네오콘을지지하고 있다. 미국의 텍사스 웨이코에서 부쉬 대통령의 목장이 있는 크로퍼드까지를 요즘 부쉬랜드라고 부른다. 부쉬랜드는 앵글로 켈트 족을 중심으로 한 침례교와 감리교가 주류를 이룬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남북전쟁 때는 남부연방을 지지했고 그 후에는 백인인종우월주의자들인 KKK단 까지 지지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신학적으로 원리주의의 색채를 띤다.


이들은 Left Behind라는 원리주의적 종말 소설을 마치 성경처럼 다루며 즐겨 읽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사실화된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한 '휴거' 등의 소설이 그 아류이다. 9.11 이후에는 미국인들의 35%가 종말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7%가 세계의 종말이 자신들의 생전에 온다고 믿고 있고 59%가 계시록의 예언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 부쉬랜드 사람들은 원리주의의 단연 선두에 서고 그 선두에 빌리 그래햄이 있고 부쉬는 그에 의해 그들 식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부쉬家 사람들은 조지 부쉬 대통령을 여호수아라고 불러 준다. 이 여호수아가 닉슨 이후 미국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미쳐도 좋다고 하는 네오콘 즉 렘스펠드, 콘돌리스 등에 둘러 싸여 더러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폭탄으로 이라크를 없애고 미국의 돈으로 이라크를 재건하자고 외치고 있다. 이들의 논거는 다윈의 '적자생존'이다.


원리주의자들은 가톨릭교회나 유대교에 적대적이다. 이들은 다른 인종과는 결혼은 물론 데이트도 하지 말라고 한다. 이들은 결코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공화당 정부 즉 부쉬 대통령의 강력한 후원자들이기도 하다. 빌리 그래함과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은 부쉬가 의지하는 정신적인 지도자들이다. 9.11 사태 후 원리주의자들은 반 유대적 정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스라엘"이라고 말했다. 악의 종교인 이슬람교로부터 공격받는 모습이 같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라크 전쟁을 계시록 14장의 실현이라고도 말한다. 미국의 원리주의자들의 특징은 철저하게 세속적으로 성경 해석을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을 자기 중심적으로 실천한다. 아주 비기독교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반유대적이면서도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것은 재미있는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의 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여 주기 위해 사용하시는 꼭두각시들이 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미국이 이런 생각을 하는 기독교 원리주의자들 때문에 이스라엘을 돕는 게 아니다. 미국의 네오콘에게 있어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란 오로지 정권 유지를 위한지지자들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돕는 것은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의 힘 때문이다. 유대인 인구는 2.4%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미국 의회 의원들 70% 이상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수도사적 삶을 통한 회복


'미국문화의 몰락 (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을 쓴 모리스 버만은 몰락을 면하기 위해 '수도사적 삶'을 살라고 주장한다. 그의 수도사적 삶이란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데아의 핵심적 내용을 이루는 정신을 추구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 어쨌든 지금 세계의 최강국이 된 미국을 이룬 저력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청교도 정신을 말한다. 수도사적 삶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위해서 사는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은 전염성이 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세계 역사를 움직이며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간다.


모리스 버만에 따르면 수도사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맥도날드 햄버거 대신에 무공해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 준다. 캐리비언베이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고 드넓은 바다에 데리고 가서 대자연을 느끼게 해준다. 현대적인 편의 시설을 추구하지 않고 운동과 노동의 정당성과 신선함을 추구한다. 텔레비전을 끄고 독서하게 하고 시시껄렁한 탤런트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올바른 가치와 방향에 대하여 이야기 하게 한다. 성경을 알레고리칼하게 읽고 이리저리 가볍게 적용하기 보다 성경을 성경으로 읽으며 그 무거운 가치를 묵상하고 삶 속에서 구현해 간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 왔다.


신은 없다. 무신론자인 테러리스트도 없다. 또한“테러와의 전쟁”도 없다.


<2004년 무신론의 해 > 캠페인(2003년 12월 13일부터 라엘 성하(His Holiness Rael)에 의해 시작)을 펼치고 있는 라엘리안 무브먼트(www.rael.org, www.thereisnogod.info)는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조지 부시의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조지 부시는 마치 신이 미국의 정책들을 허락한 것처럼 이야기하며 전쟁은 불행한 일지만 악의 세계를 제거하기 위해 필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들로 인해 수천 명의 이라크 아이들이 죽어 가고, 이라크인들이 미국과 영국의 군인들에게 고문당했으며, 수백 명의 미국인들이 죽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이슬람 국가 사람들이 복수를 위해 어린 아이들에게 이슬람교만이 유일하게 진실된 종교라고 가르치도록 만들고 있다.


현재 ‘무신론의 해’ 캠페인은 더욱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순응자들이 무신론자들을“비애국자”라거나 다른 터무니없는 말로 부르는 정치적 순응자들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신이 조정하는 게임” 안에서 녹초가 된 무기력한 인질처럼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과 인간성의 지위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미국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와 다른 무신론 단체들은 우리가 행동하든 행동하지 않던 모든 것은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가르친다. 인류의 미래는 신이 아니라 인류에게 달려 있다.


이제, 폭력은 단지 더 많은 폭력을 야기할 뿐이며, 오직 사랑만이 더 많은 사랑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낡은 종교 문헌 속에 있는 얼마나 많은 폭력들이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 냈는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예수는 "눈에는 눈"이라는 구약성서의 구절을 바로 잡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로 바꾸었다. 매일 아침 성경을 읽는다고 떠들어 대는 조지 부시는 이러한 예수의 가장 유명한 메시지를 놓친 모양인데, 만일 그가 진정으로 예수를 따른다면 세계를 전쟁 대신 평화로 이끌었을 것이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라엘 성하는 이렇게 천명하였다:


“테러리즘과의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또 하나의 엄청난 거짓말이다. 그런 것은 없다. 전쟁이란 한편의 군대가 또 다른 군대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테러리즘과 싸우는 것이 경찰의 임무일 수는 있다.

그러나 군대의 몫은 아니다. 올바른 가르침이 실패한 곳에서 테러가 발생한다. 따라서 테러리즘과 싸우는 진정한 무기는 교육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다른 모든 사란들을 존중하게 하는 무신론의 가치관을 올바로 가르친다면, 어느 누구도 상상으로 만들어 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며 알라나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의 이름으로 비행기를 타고 빌딩과 충돌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신론적 교육을 받게 되면 아무도 사후에 있을 어떤 종류의 삶도 믿지 않게 되어 결국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현재의 삶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물론 평화로운 시민들은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은 이미 잘못된 교육으로 자신들이 믿는 초자연적인 신들의 이름으로 인간폭탄이 되어 그들의 믿음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의 임무이다. 막대한 군사비, 최신 제트기, 장갑차, 미사일 그리고 인공위성 같은 것은 보잉 747기를 공중 납치하려고 결심한 소형 칼을 가진 3명의 남자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테러리스트 캠프에서의 군사훈련을 보여주며 테러리즘에 맞서는 전쟁이 필요한 것처럼 말하는 언론 매체들을 보면 언제나 우습다. 소형 칼을 가지고 비행기를 공중납치하기 위해 낙하산 부대의 캠프에서 수개월씩이나 훈련받을 필요는 없다!


정신차려라! 그것은 칼이지 기관총이 아니다! 이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주장을 옹호하려는 순전히 거짓된 캠페인이다. 그리고 미국은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또 다른 수천 명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함으로써 자신들의 동료와 가족이 겪은 죽음과 고문에 복수하기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1000배 더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자유의 나라”라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미국의 시민들이 갑자기 전쟁을 일으키고, 고문과 강간을 일삼는 범죄자들이 될 수 있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아랍인들이나 이슬람교도들을 9.11 공격에 대해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응징이 필요한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여기도록 만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거짓에 세뇌 당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1938년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히들러가 유대인들을 집단수용소에 몰아넣고 말살하는 것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을 증오하도록 세뇌 당했던 상황과 완전히 똑같다.


소위 "억류자"들이 전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는 더욱 더 아우슈비츠와 비슷하며 실제로 강제수용소이다.


상상이 만들어 낸 “테러와의 전쟁”이 더 많은 테러리스트들을 만들고 있으며 슬프게도 미래에는 그것이 증명될 것이다. 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 자신들의 신의 이름으로 자살폭탄이 될 준비가 된 종교적 광신자들은 몇 백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자들은 이슬람 세계 전 역에 걸쳐 수십만 명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과거에는 아니었지만 현재는 미국을 증오한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전쟁은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하리라.”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이야기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기억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실로 중요해 지는 것이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속이고 있는 조지 부시가 예수로부터 나온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지혜로운 말들을 실천했다면 9.11 이후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적들을 사랑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더 많이 지원하고, 더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이라크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죽게 만드는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이스라엘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대량살상용 핵무기를 파기하도록 요구하고, 보다 균형 잡힌 관계를 위해 이스라엘에 제공했던 만큼의 돈을 아랍 국가들에게도 제공했을 것이다. 이것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의 수를 급격히 감소시킬 수 있을 평화와 사랑을 가져 왔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공항의 보안이 허술해 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보안은 경찰의 임무이지 군대의 몫이 아니다.


무신론을 가르치는 것은 테러리즘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무신론자인 테러리스트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신과 천국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인가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게 되며, 오로지 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면서 다른 이들의 삶도 보다 윤택해지기를 바라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 종료 이후 미국을 난처하게 하고 있는 것은 ‘거짓말’ ‘오판’ ‘고립’이라는 세 가지 곤경의 장면이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고, 테러조직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으므로 후세인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의 미국의 명분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명분은 모두 부시 정권의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모기약이라면 몰라도 대량살상무기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고, 빈 라덴 조직과의 연계도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거짓말의 장면’이라면, 후세인 정권 소멸과 함께 미국이 원하는 모습의 새로운 이라크가 재빨리 탄생할 것이라던 기대가 무너진 것은 ‘오판의 장면’에 해당한다. 미국에 지금의 이라크는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수렁과도 같다. ‘고립의 장면’도 심각하다. 종전 이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반미정서와 반미여론은 더 넓게 확산되고, 서유럽 동맹국들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되고, 이슬람권의 대미 증오는 더 깊어진다.


이런 곤경으로부터 미국이 배운 것이 있을까? 정확히 말해 그 곤경들은 ‘실수’의 결과다.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긴 하나, 미국 혼자서 일방주의와 무력 헤게모니만으로 주물럭거릴 수 있을 만큼 세계가 간단하지 않고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부시와 그 친구들은 깨우쳤을까? 이라크 주둔군을 다국적군으로 바꾸려는 미국의 최근 시도는 일방주의의 한계를 인정한 정책 변화 같아 보인다. 이라크 주둔군에 유엔의 위임장을 확보해주려는 접근법도 그런 변화를 반영한다. 부시 정권 내의 온건파 국제협력주의가 일방주의적 접근을 견제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미국이 ‘실수’로부터 무언가를 배웠다는 변화의 신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부시 정권의 정치기조와 태도의 근본적 변화까지 시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시 정권을 특징짓는 것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는 식의 협애한 편가르기, 우리 편이면 선이고 아니면 악이라는 단순한 판단구도, ‘미국을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국가주의적 애국주의, 미국에 이로운 것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롭고 북극곰과 남극의 펭귄들에게도 두루 이롭다는 미국 중심주의, 미국은 문명과 자유의 모델이며 그러므로 누구도 트집 잡을 수 없는 영원한 선이라는 오만 등등이다. 이런 정치기조로부터는 무엇이 미국의 ‘실수’였는가에 대한 바른 인식이 나오기 어렵다. 부시 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는 자위권이 있다”거나 “우리가 당했으므로 응징한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한다.


누구도 미국의 자위권을 부정하지 않고 위협에 대처할 미국의 권리를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군사적으로 맞설 수 없는 초강국이라는 단 한가지 사실 때문에라도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절대로 저버릴 수 없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은 국제질서와 그 질서가 기초할 정의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다. 힘이 세다고 해서 명분도 없이 다른 나라를 맘대로 친다면 그것은 주먹패 골목대장의 행동이지, 책임있는 문명국의 정의로운 행동일 수 없다. 부시 정권이 문명·자유·정의를 말하면서도 자국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에 빠져 스스로 질서와 정의의 기초를 훼손하고 강대국의 정치적 책임을 제 손으로 ‘유괴’한 것이 구태여 지적하자면 문제의 핵심이다. 세계가 왜 이라크 침공에 반대했는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부시와 그 친구들이 이해하고 있을까?


도덕적 헤게모니와 정치적 헤게모니


코소보의 '인종청소'의 모습은 단순한 학살이 아니다. 세르비아 계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600년 묵은, '피의 복수'인지도 모른다. 이에 '인종청소'를 '인도 적 차원'에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유엔의 안보리를 거치지 않고 시작된 '인권전쟁'. 러시아와 중국의 강력한 비난에도 강행을 서두른 까닭은 걸프전의 방식대로 이끌어 나가면 밀로세비치로부터 오래 가지 않아 무조건적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성급한 과대망상증적 오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유럽 정교회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알바니아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회교세력들을 지원함으로써 중동세계에 대한 포용의 제스츄어를 동시에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략도 숨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습 이후 코소보에서의 양상은 어떻게 되었는가. 공습에 대한 보복의 표현으로 알바니아계에 대한 학살은 더 확대되었고, 결과적으로 무력적 해결은 밀로세비치에게 발칸지역 내에서 더 굳건한 정치적 위상을 강화해 주었으며 '인도주의적 동기'는 더 많은 피를 불러오게 한 셈이다.


미국이 가지는 경찰국가로서의 의무와 패권주의적 동기는 역효과를 일으킬 소지가 다 분하므로 이 사태의 해결은 비교적 중립적이고 평화적인 국제적 규범을 마련할 수 있는 국제기구에서 맡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과거 인디언에 대한 '인종청소' 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고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신적·도덕적 헤게모니가 없을 때 정치적 헤게모니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말해준 것은 안토니오 그람시이다. 도덕적 헤게모니가 바로 문화적 헤게모니다. 문화적 헤게모니가 없이는 군사·경제적 헤게모니도 사실은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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